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마노프 가문 (문단 편집) ==== 왕조 말기 ==== 러시아의 후진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은 [[크림 전쟁]](1853~1856) 때였다. 러시아 군대의 후진적인 모습은 다같이 [[막장]]이었음에도 두드러져 보였고, 패전 직후 황제가 된 [[알렉산드르 2세]](재위 1855~1881)는 이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알렉산드르 2세는 러시아의 후진성과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 '아래로부터의 혁명보다 [[위로부터의 개혁]]이 더 낫다'며 국가로부터의 개혁을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1861년 역사적인 농노 해방령을 내렸다. 그러나 농노 해방령은 러시아가 그것을 받아들일 만큼의 준비가 이루어진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급진적으로 시행되었다. 농민들은 더 궁핍해졌고 견디다 못해 다시 농노가 되는 농민도 있을 정도였다.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은 러시아의 지식층과 개혁파에게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하고 러시아 제국은 개선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만 보여주었다. 결국 알렉산드르 2세는 1881년 인민주의 단체의 폭탄 암살으로 사망했다.[* 첫 테러 때는 무사했으나, 멀쩡히 살아나와 "난 괜찮다"고 하는 순간 대기했던 또다른 암살범이 기다렸다는 듯이 폭탄을 던졌다. 즉사하진 않았지만 팔 하나와 두 다리가 잘려나가고 피투성이로 쓰러져 "짐은 궁궐에서 죽고 싶도다"라는 말을 겨우 했는데, 누가 봐도 가망이 없어서 신하들이 마지막 부탁대로 궁궐로 데려가서 결국 궁궐 안에서 사망했다.] 뒤를 이어 즉위한 그의 아들 [[알렉산드르 3세]](재위 1881~1894)는 이를 계기로 반동, 억압정치를 더욱 강화했다. 이로서 로마노프 왕조의 운명도 결정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르 3세는 업적 또한 많이 쌓아놓아, 그렇게까지 평가가 나쁜 인물은 아니다.] 로마노프 왕조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는 가정적으로는 부드럽고 온화하면서도 성품이었는데, 군주로는 고집불통에 전제군주제를 가부장적 왕권신수설과 결부시켜 전문가의 조언은 전혀 듣지 않고, 독단적이라 신하들의 소통에도 문제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국정을 어떻게 이끌겠다는 대외 전략이나 내정 개혁 비전도 없었다. 특히 [[러일전쟁]]에서 [[일본 제국]]에게 패배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차후 세대에서 1, 2차 세계대전에서의 독일에 대한 승리를 견인하기도 했었다. 러일전쟁 도중 발생한 경제난으로 '[[피의 일요일 사건(러시아)|피의 일요일 사건]]'이 터지면서 제정에 최후의 희망을 가졌던 모든 이들의 기대는 박살났고 로마노프 왕조의 운명은 이것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즉, 1905년 터진 1차 러시아 혁명은 로마노프 왕조의 전제정에 격렬히 항의하고 개혁을 부르짖었다는 점에서 12년 후의 2차 혁명의 전조였다. 처음에는 민중들의 거센 항의를 무시했던 [[니콜라이 2세]]는 저항이 점점 더 커지자 두려운 마음에 개혁을 약속했고, 의회인 [[두마]]를 설치하고 [[사이비]]로나마 [[입헌군주제]]를 표방했다. 차르는 이 요구가 아마 한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러시아 민중은 이제 제정에 희망을 버렸고 전제정에 신물을 내고 있었다. '''1914년, 복잡한 동맹관계에 의해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전쟁]]을 시작하자 이러한 불만과 분노와 증오가 일시에 폭발했다. 물가 폭등과 물자 부족, 계속되는 전선의 패배 소식 등 모든 것이 제국의 실정(失政)과 무능과 부패를 보여주었다.''' 1917년, 러시아력 2월에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 일어난 빵을 달라는 민중시위는 금세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어 마침내 혁명으로 발전하였다. ([[2월 혁명]]) 전선에서 이 소식을 들은 니콜라이 2세는 퇴위를 선언, 동생에게 양위하였지만 동생 미하일 대공이 거부하여 [[제정]]은 붕괴되고 임시정부가 통치하는 [[러시아 공화국]]이 들어선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 사회의 혼란은 계속되었고, 러시아력 10월에 [[볼셰비키]]가 무력으로 임시정부를 뒤엎고 [[소비에트 러시아]]가 건국된다. ([[10월 혁명]]) 1918년 [[러시아 내전]]이 개시되자 유폐되었던 황제 일가는 처형되었으며, 다른 황족들 역시 해외로 망명하거나 피살당하고, 이것으로 300년간 이어진 로마노프 왕조도 역사 속의 잔재로만 남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